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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교양 다큐

꼬꼬무 가을의 전설 최동원 진짜 이야기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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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가을의 전설 최동원 진짜 이야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50회

방송 리뷰 후기 노트

 

2022년 10월 20일 목요일 밤 10시 30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방송에서는 이제는 절대 재현될 수 없는 이들이 그해 야구장에서 벌어진다라며 기적의 그 날 이라는 화면이 나옵니다. 무쇠 팔, 강철 어깨, 기적의 사나이라는 수식이 따라다진 최동원, 꼬꼬무에서는 전설적인 야구 선수 최동원의 진짜 이야기를 펼친다고 합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한 이래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그 중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지 쉽게 말할 수 없지만 최동원(51)의 이름을 빼 놓고 한국 프로야구를 말할 수는 없다. 이제는 그를 알지 못하는 세대들이 자라나고 있지만 한국에는 '야구=최동원'이었던 시절이 아직도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최동원의 인생은 그의 선수 시절만큼 굴곡이 많았다. 최동원의 선수 시절이 그의 전매 특허인 불 같은 강속구 같았다면 지금 그의 인생은 그를 대표하는 또 다른 구종인 커브의 곡선을 닮은 듯하다.

 


약력

1958  부산 출생
1978  로마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1980  도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1981  캐나다 대륙간컵대회 최우수선수
   실업야구 3관왕(MVP·최우수신인상·최다승)
1982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우승)
1983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입단
1984  프로야구 MVP·다승왕·탈삼진왕·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
1989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이적
2001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코치
2005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코치
2007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2009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 감독관
2011  사망
[네이버 지식백과] 야구인 최동원 - 불꽃 승부사 (스포츠인, 정승원)

 

고교야구가 열풍이던 1975년 9월의 동대문 운동장. 전날 믿기 힘든 경기력을 선보이고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또 마운드에 오른 경남고 투수, 최동원. ‘17이닝 연속 노히트 노런’이란 한국야구 역사상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혜성처럼 등장한다. 무쇠팔 최동원의 ‘심장이 멎을 것 같은’ 폭포수 커브는 한국 프로야구의 황금기를 이끌고, 대망의 1984년 가을! 그해 야구장에서는 그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꿈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1차전 완봉승, 이틀 후 3차전에선 완투승! 그리고 5, 6차전까지 나선 철완 최동원의 활약에 단 ‘1승’이 목표였던 롯데는 유력한 우승 후보 삼성을 턱밑까지 추격하는데… 운명의 7차전, 점점 무너지는 최동원. 결국 점수 차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최동원의 어깨에 달린 롯데의 우승. 과연 어떤 결말을 마주했을까. ‘나’ 보다는 ‘우리’가 먼저였던 톱스타 최동원은 이후 뜻밖의 행보를 보이는데... 혼신을 다해 던진 승부수는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야구장 밖에서도 거인의 풍모를 보인 야구선수 최동원의 ‘진짜’ 이야기가 2022년 가을, 펼쳐진다.

 

1984년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진행되어, 에이스 최동원이 롯데 자이언츠를 데리고 전무후무한 나홀로 4승으로 우승한 한국시리즈. 전기리그 1위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가 악명높은 져주기 게임으로 롯데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골랐다가 도리어 우승을 놓친 것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역사상 처음으로 최종 7차전에서 4승 3패로 우승팀이 결정된 한국시리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구덕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경남중학교를 거쳐 경남고등학교에서 야구를 계속했다. 1975년 고교 2학년 때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17이닝 연속 노히트 노런 기록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76년 청룡기 대회 승자결승에서 군산상고를 상대로 1경기 최다 탈삼진(20개)를 기록하며 완봉승을 거둬 초고교급 투수로 올라섰다.

1977년 연세대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되었다. 1981년 실업야구팀 롯데에 입단하여 다승왕, 신인왕, 최우수선수 등 3관왕에 올랐고, 대륙간컵 국제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는 활약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으나 병역문제 등으로 인해 메이저리그행이 무산되었다.

1983년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1984년 51경기(284⅔이닝) 등판, 14차례 완투, 27승(13패, 6세이브), 탈삼진 223개, 평균자책점 2.40의 놀라운 성적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을 견인하고, 최우수선수상과 다승왕, 탈삼진왕을 석권했다. 한국시리즈 7차전 중 5번 등판하여 4승을 거둠으로써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을 세웠다. 이후 1985년 20승, 1986년 19승, 1987년 14승을 올리며 당대 최고 투수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1988년 선수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선수협의회 결성 문제로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기도 했다. 트레이드 이후 의욕을 잃어 침체기를 맞게 되었고, 1990년 화려한 선수생활을 뒤로하고 은퇴했다. 8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프로 생활을 마치기까지 그는 총 248경기에 등판하여 1414.2이닝을 소화하고, 103승 26세이브 74패, 1019 탈삼진, 평균자책점 2.46이라는 좋은 기록을 세웠으며, 무려 80경기를 완투(완봉 15경기)하였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 30년 역사에서 가장 막강한 구위를 자랑한 최고의 에이스로, 트레이드마크인 금테 안경을 끼고 마운드에 올랐다. 주무기는 150km/h에 육박하는 직구와 낙차 큰 커브였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단련된 연투 능력으로 인해 ‘무쇠팔’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1977~1978년 국가대표 시절에는 거의 매 경기 마운드에 등판했고,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투구했을 정도로, 이닝 소화능력이 출중했다.

은퇴 이후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기도 했으며, 방송사 해설위원, 방송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2001년 은퇴한 지 10년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와 한화 이글스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07년 한화 2군 감독이 되었다. 2009년부터 한국야구위원회 경기감독관으로 활동했으나 2007년 진단을 받은 대장암으로 2011년 9월 세상을 떠났다. 친정팀인 롯데 자이언츠는 선수 시절 그의 등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동원 [崔東源]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사진 출처: tvN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 해당 방송 및 업체, 출연자와 상업적 연관없으며,  대가없이 작성한 개인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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